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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테리 정보

미스테리 신라 왕족(Silla royal family)

by 동림동꿀쟁이 2022. 6.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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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최장자 인골

 

1. 편두&외계인

2021년 7월 경북 경주 탑동 유적 발굴 현장에서 180cm의 신장을 가진 남성 인골이 발견되었다. 이는 지금까지 발견된 삼국시대 인골 중 가장 거대하다. 현재까지 발견된 삼국시대의 남성 인골 평균 신장은 160cm 초반 정도이다. 탑동 유적지는 기원후 1세기부터 6세기까지의 신라시대 무덤군이다. 문화재청은 인골의 두개골 모양을 주목했다. 두개골이 얼굴과 이마에 비해 굉장히 길고 컸기 때문이다. 이는 고대 풍습 중 하나인 편두로 인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이상할 정도로 거대했다. 편두는 아직 두개골이 붙기 전인 아기 때 머리를 의도적으로 눌러 납작하고 길게 만드는 옛풍습이다. 편두로 인한 두개골 변형의 경우 콧잔등과 이마가 평평하게 이어져 있으며 위로 갈수록 납작하고 좁아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발굴된 인골의 두개골은 편두의 전형적인 특징은 없는 채로 두개골 자체가 굉장히 큰 모습이었다. 이에 세간에서는 전설처럼 떠돌던 신라 거인의 실제 후손이 아니냐는 말이 농담처럼 떠돌기도 하였다. 예로부터 신라는 기골이 장대하고 덩치가 산만한 사람들이 많기로 유명했다. 키가 컷던 사람들은 대부분 왕족 출신이었다. 신라의 4대 군주 탈해 이사금, 22대왕 지증왕, 26대왕 진평왕 등 당시 기준으로 계산해보아도 2미터에 육박하는 장신 왕족들이 이상하게 많은 나라였다. 각종 기담집에는 신라 근처 거인이 모여 살았다는 '장인국'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기도 하다. 하지만 장인국에 대한 기록은 그저 구전. 키가 큰 장신 왕들은 신분적 의미로서의 표현 혹은 당시 달랐던 단위 계산으로 인한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정설로 통하고 있다. 이러한 신라의 역사적 사실들과 엮어볼 수 있는 흥미로운 가설이 하나 있다. 각국의 창조설화를 연구한 미국의 로버트 박사는 멀리 떨어진 동서양의 창조설화를 비교해보던 중 한가지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다름아닌 '알'이었다. 하늘에서 내려온 둥근 알에서 '신' 혹은 '대리자'가 나와 많은 지식들을 전수해주었다는 식의 신화는 아시아를 비롯하여 마야 문명이 번성한 남미 지역 고대 이집트 등 전세계에 퍼져 있었다. 자세한 내용은 문화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큰 틀은 꽤 비슷한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이러한 난생설화를 기초로 하는 문명들의 공통된 특징이 바로 '편두'이다. 세간에서는 이러한 편두가 흔이 신이라고 일컬어지는 외계인의 머리를 모방하기 위함이었다는 얘기가 있기도 한다. 로버트 박사는 '고도의 지능을 가진 생명체가 빛나는 알 형태의 구체에서 나와 학문을 전파한 사례는 전세계 모든 문명의 탄생에 기초한다' 라고 말하며 알에서 인물이 태어나는 일명 '난생설화'가 단순한 설화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암시하였다.

2. 알에서 나온 박혁거세

이는 우리나라에서도 그 사례를 찾아 볼 수 있다. 알에서 나왔다고 전해지는 박혁거세 탄생 설화이다. '기원전 69년 사로국의 6촌장이 나정 근처 하늘에서 신기한 빛이 비추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곳으로 가니 큰 알같은 것이 있었는데 그 안에서 사내아이가 나왔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이는 로버트 박사가 설명하는 세계 각국의 창조설화와 굉장히 비슷한 맥락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학자들은 이러한 난생설화가 단지 해당 인물을 더 특별하게 보이게 하기 위한 장치일 뿐이라며 그것이 고대 외계인이나 UFO와 연관되었다는 것은 터무니 없다고 말하였다. 세계 각국의 신화에 이러한 알이라는 공통된 요소가 등장하는 것은 둥그런 알의 모습이 태양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아 그것을 형상화 하다 보니 비슷해진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박혁거세의 탄생 설화도 그저 신격화를 위한 장치였을 뿐일까? 2004년 3월, 경북 경주의 유적지 '나정'에서 신라 초기 우물과 옛 건축물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시조에 사당을 세웠다, 나정에 신궁을 지었다. 유적의 모습과 유물 연대를 분석한 결과 놀랍게도 삼국사기의 박혁거세 기록과 거의 일치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박혁거세의 신라 건국 신화는 일종의 전설로서 실질적인 신빙성은 없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삼국사기의 기록에 따르면 박혁거세는 여섯 촌장의 추대로 왕이 되었다고 나와있다. 그리고 경주에는 실제로 6촌이라는 지명이 남아있다. 박혁거세가 실존 인물이었다는 것에 대해서는 아직 더 연구하고 입증해야 할 부분들이 남아있긴 하지만 삼국사기 초기의 유적이 실제로 발굴된 것은 실로 놀라운 역사적 발견이었다. 박혁거세가 실재하였다면 그의 탄생에 얽힌 비밀을 풀어줄 열쇠도 언제가 나오지 않을까?

3. 골품제

신라에는 골품제라는 신분제가 있다. 골품제에서 가장 높은 계급은 성골과 진골이다. 성골과 진골이 의미상의 계급이 아닌 실제 특수한 혈통 자체를 일컫는 말일 수 있다는 이야기가 있기도 했다. 성골과 진골의 신분격차는 압도적이었다고 한다. 진골은 왕이 될 수도 성골의 몸에 함부로 손을 댈 수도 없었다고 한다. 성골과 진골이 무엇을 기준으로 구분되었는 가는 아직 사학계에 물리지 않은 미스테리라고 한다. 신라 시대에 유독 기골이 장대한 장수와 왕이 많았다는 것  박혁거세의 난생설화가 고도의 문명에 의한 창조역사설과 비슷하다는 점 등 신라의 풀리지 않은 미스테리들은 어쩌면 골품제과 연관이 있지는 않나 싶다. 고구려, 백제 등과 다르게 유독 신라에만 골품제가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일까? 뼈에 등급을 매긴다는 것은 단순히 비유적 표현이 아닌 실존했던 고대인의 자손을 일컫는 말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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