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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테리 정보

미스테리(Mystery) 7대 불가사의 아르테미스 신전(the Seven Wonders of Artemis)

by 동림동꿀쟁이 2022. 7.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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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테미스 신전

1. 120년만에 완성된 신의 성전

아르테미스는 달과 사냥 동물과 처녀를 상징하는 그리스의 여신이다. 그리스인들은 아르테미스를 신성시하며 그녀를 숭배했다. 거칠고 복수심이 강한 여신이지만 다산과 풍요를 가져다 주는 신이었던 만큼 그리스인들에게는 절대적인 입지를 가졌던 신이었다. 이는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아르테미스 신전'의 역사 속에 잘 드러나 있다. 아르테미스 신전의 최초 원형은 청동기 시절의 건축물로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것을 '아마존'이 건설했다고 믿고 신성시했다고 한다. 하지만 기원전 7세기에 발생한 홍수로 인해 신전은 폐허가 되어버렸다고 한다. 기원전 550년 에페소스의 대군주이자 최고의 부호였던 크로이소스는 신전을 재건하기로 마음먹고 크레타 출신의 건축가인 케르시프론과 그의 아들 메타게네스에게 작업을 의뢰하게 된다. 이 재건 작업은 무려 120년이나 걸렸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완성된 아르테미스 신전의 위용은 압도적이었다. 건물 총길이 115m에 너비는 46m에 달했으며 높이 20m의 백색 대리석 기둥이 127개나 있었다. 이것은 대리석으로 지어진 최초의 그리스 신전이기도 했다. 고대 그리스의 지리학자 파우사니아스는 '아르테미스 신전은 인간이 지은 모든 걸물을 능가하는 신의 성전이다' 라고 말했다. 당시 아르테미스 신전을 목도한 모든 사람은 그 앞에 무릎을 꿇고 경배를 표했다고 한다. 그 웅장함과 신성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리스의 고대 역사가이자 역사의 아버지라고 불리기도 하는 헤로도토스는 아르테미스 신전을 직접 돌아보고 '기자에 있는 대피라미드와도 견줄 수 있는 걸작이다' 라고 말하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2. 부활한 아르테미스 신전

하지만 기원전 356년 신전은 어처구니 없는 이유로 파괴된다. 그리스 역사상 최악의 방화범이라고 불리는 '헤로스트라투스'에 의해 신전이 통쨰로 불타버리고 만 것이다. '신전이 불타 무너진 후 네페소스의 점성가들은 얼굴을 치고 소리를 지르며 재앙이 내릴 것을 두려워 하였다' 헤로스트라투스는 악행을 저지르려면 확실하게 저질러 후대에까지 나의 이름이 전해지게 하라 라는 비뚤어진 신념을 가진 자였다. 범죄 후 헤로스트라투스는 처형되었으나 그의 바람대로 그의 악행은 후대를 거쳐 현재까지 전해지게 되었다. 이후 에페소스인들은 신전을 다시 재건하기 위해 노력했다. 왕들은 기둥을 만들어 기증하고 여인들은 보석을 팔아 자금을 지원했다. 원정 중 에페소스에 들렀던 알렉산더 대왕은 신전이 불에 타버렸음에도 불구하고 그 신비함에 매료되어 자신의 이름으로 신전을 세워준다면 재건하는데 드는 모든 비용을 지원하겠다고 제의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에페소스인들은 다른 나라의 신을 모시는 신전을 세우는 것은 옳지 않다며 단호하게 거절했다. 야심이 강했던 에페소스인들은 신전을 재건하며 지구 상의 어떤 신전에 비교하여도 뒤쳐지지 않는 유일무이한 신전으로 만들고자 했다. 당시 가장 훌륭한 신전이라고 평가받던 것은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이였다. 이에 에페소스인들은 재건하는 아르테미스 신전을 아르테논 신전의 두 배 크기로 만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아르테미스 신전은 기존보다 더 거대한 길이 137m, 넓이 70m의 규모로 부활했다. 신전에는 가장 순도 높은 순백색 대리석만이 사용되었는데 날이 좋을 때면 마치 신전이 자체적으로 빛을 발산하듯 신비롭고 아름다운 분위기를 풍겼다고 한다. 이후 아르테미스 신전의 규모와 화려함은 입소문을 타고 널리 퍼졌다. 당시 에페소스는 아르테미스 신전 뿐 아니라 대부분의 건축물들을 전부 대리석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관광지로서 인기가 상당했다고 한다. 에페소스 항구에는 늘 관광객들을 태운 배들과 교역 상인들로 넘쳐났다고 한다. 

3. 존 터틀 우드

아르테미스 신전은 페르시아의 침공 당시 최후의 피난처로 사용되기도 했다. 페르시아인들이 도시의 중심부가지 밀고 들어오기 시작하자 에페소스인들은 모두 신전으로 뛰어가 신전 기둥에 잔신을 줄로 묶고는 '성역이다'라고 외쳤다고 한다.
페르시아군들도 아르테미스 여신을 신성시하기는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신전 안으로 도망친 에페소스인들은 그 누가되었건 해치지 않았다고 한다. 이것은 일종의 불문율로 우연히 신전안으로 들어간 동물들도 같은 대우를 받았다고 한다. 전쟁에서 살아남은 아르테미스 신전은 이후 에페소스에 기독교가 번지며 다시 한번 위기를 맞았다. 기독교인들의 우상숭배 금지에 의해 신전과 여신 숭배가 위협받은 것이다. 각 종교의 충돌이 있긴 했지만 에페소스인들의 굳은 신념으로 인해 신전은 또 한 번 위기를 넘겼다. 하지만 서기 268년 동게르만 부족인 고트족의 습격으로 인해 신전은 결국 파괴되고 만다. 이후 기독교인들이 파괴된 신전을 수리하여 예배당으로 활용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나 그 기간은 길지 않았고 결국 아르테미스 신전은 폐허가 되어 역사의 한 페이지로 사라지고 말았다. 1858년 영국의 고고학자였던 존 터틀 우드는 터키를 방문하였다가 우연히 옛 에페소스의 사라진 유적 아르테미스 신전의 존재를 알게 된다. 1863년 아르테미스 신전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 없었던 우드는 자신의 생업을 포기하고 신전을 찾기 위해 탐험을 시작했다. 그로부터 3년 뒤인 1866년 그는 에페소스의 유적지를 발굴하던 중 그리스의 비문 하나를 발견한다. 그는 비문에 나오는 내용을 토대로 추적을 시작하였고 1869년 12월 31일 6m지하에 묻혀 있는 사원을 발견해낸다. 오랜 세월 잠들어 있던 고대 7대 불가사의가 다시 세상 밖으로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비록 신전은 거의 파괴되어 잔해만 남은 상태였지만 잊혀진 역사의 한 페이지를 다시 기록하는 영광스러운 순간이었다. 발굴된 아르테미스 신전의 일부는 현재 영국의 대영박물과에서 볼 수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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