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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테리 정보

미스테리 지하도시 데린쿠유(Mystery Underground City of Derinkuyu)

by 동림동꿀쟁이 2022. 7.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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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린쿠유 지하세계

 

- 전부 밝혀지지 않은 지하도시 이야기

1963년 터키의 카파도키아 농장에서 도망친 닭을 쫓던 아이는 땅에서 조그만 구멍을 하나 발견한다. 닭을 찾기 위해 구멍으로 들어간 꼬마는 그 곳이 작은 동굴이 아닌 긴 통로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곳은 데린쿠유 터키어로 깊은 우물이라는 뜻이다. 아이의 발견으로 인해 세상에 드러나게 된 데린쿠유는 발견 즉시 전세계적인 화제가 되었다. 지하도시는 몇 천년도 더 전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었으며 규모는 최대 3만명까지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거대했다. 깊이는 지하로 85미터나 되었는데 현대의 고층 빌딩으로 계산해보면 대략 25층짜리 빌딩이 거꾸로 서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개미굴처럼 이리저리 얽혀 있는 통로는 수백개의 방들과 공동시설로 이어져 있었으며 부엌, 침실, 학교, 창고, 감옥, 무덤 등 그 용도와 종류가 다양했다. 학자들이 제일 먼저 주목한 것은 '이 거대한 규모의 지하도시를 어떻게 건설했는가' 였다. 카파도키아 지역은 화산 활동이 매우 활발한 곳이다. 오랜 시간 화산이 폭발과 휴식을 반복한 탓에 카파토기아 지역 인근의 암석층에는 화산재로 두텁게 쌓여 있는 화산암들이 특히 많았다. 부드러운 화산암으로 이루어진 지형은 특별한 기구의 도움 없이도 땅을 파내는데 수월했다고 한다. 공기에 닿으면 다시 단단해 지는 특성 또한 가지고 있어서 지하도시 건설에는 최적의 조건을 갖춘 땅이었다. 이로 인해 데린쿠유는 수백개가 넘는 통로와 방들을 지하에 뚫고도 무너지지 않고 몇 천년의 세월을 견뎌낼 수 있었다. 하지만 학자들은 굴을 파내는 것이 수월했다고 하더라도 이 정도 규모의 도시를 땅 밑에 건설하는 데는 최소 300년의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라 말한다. 데린쿠유는 단순한 동굴이 아닌 도시의 목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설계 역시 아주 과학적이고 체계적이었다. 학자들이 제일 놀랐던 부분은 데린쿠유의 환기 시설이었다. 지하로 85미터까지 내려가는 도시에 공기를 순환시키기 위해서 지상에서부터 수직으로 뚫은 구멍들을 보든 방으로 연결한 것이다. 중심 환기구와 보조 환기구를 구분하고 공기의 흐름도 고려한 아주 과학적인 환기구였다. 학자들은 도시를 누가 건설했는지 밝혀 내기 위해 조사를 해보았지만 어렴풋이 짐작만 할 수 있을 뿐 무엇하나 명확하게 밝혀낼 수 없었다. 오랜 세월 주인이 계속 바뀌었던 것으로 추정되어 하나의 문명이라고 특정지을만한 단서가 부족했던 것이다. 제일 유력한 가설은 '프리지아인'에 의해 건설되었다는 것이다. 이 근거는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였던 크세노폰의 저서 '아나바시스'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당시 프리지아는 '훌륭한 건축가들의 나라' 라고 불릴 정도로 인정받는 기술자가 많았다. 이들이 작은 규모로 파기 시작한 굴이 점차 커져 도시의 형태를 띄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어째서 땅 밑에 도시를 세우기로 결심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고 한다. 고대 로마제국의 종교 박해로 인해 기독교인들이 은신처로 사용하기 위함이었다는 말이 있지만 그것은 프리지아인들이 도시를 건설한 이후의 일이다. 학자들은 프리지아인들의 초기 건설 이후 주인이 바뀌면서 데린쿠유가 점차 넓어지고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추게 되었을 것이라 말한다. 실제로 데린쿠유는 도시라기 보단 요새의 성격을 더 많이 띄고 있다. 데린쿠유에 살았던 이들은 지상을 두고 땅 밑을 택한 이들이었기에 외부와의 접촉을 꺼리는 경우가 많았다. 주요 통로들에는 거대한 돌문이 배치되어 있어서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안에서 문을 걸어 잠글 수 있었고 도시의 통로 곳곳에는 함정이 설치되어 있었다. 땅이 쑥 꺼지는 부분들이 존재하여 모르는 이들이 함부로 발을 디뎠다가는 그대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통로들을 의도적으로 뒤섞어 놓아 마치 미궁에 들어온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으며  중간중간 막다른 길을 배치하여 길을 해매는 이들에게 압박감을 주기도 하였다. 통로들은 넓어졌다 좁아졌다를 반복하는데 그 이유도 좁아진 통로에서 적들을 한 명씩 처단하기 위함이었을 거라고 한다. 이들이 식수로 사용하는 물길을 막으면 되지 않느냐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 부분 역시 대비가 되어 있었다. 이들은 한 곳이 아닌 여러 곳에서 우물을 끌어다가 썻으며 그 위치는 외부에서 볼 떄 전혀 티가 나지 않게끔 준비를 해두었다. 각 우물별로 끌어오는 물들은 각기 다른 저장소에 들어갔기 때문에 적들이 우물 한 두개에 독을 풀고 막아도 문제될 것이 없었다. 이로 인해 데린쿠유는 13세기 칭키스칸의 침략에서도 완벽하게 저항하며 살아남을 수 있었다. 데린쿠유는 현재 20여층 중 지상과 가까운 8층만 외부에 공개되어 있다. 터키정부가 이를 관광 산업으로 추진한 것이다. 데린쿠유 가이드를 맡고 있는 현지 가이드 사이에서는 무서운 괴담이 하나 돌고 있다고 한다. '무리를 이탈하였다가 행방불명 된 관광객이 있는데 결국은 찾지 못하였다. 그는 드넓은 지하 세상에서 그냥 사라져버렸다.' 사건의 진위성은 파악되지 않았지만 3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20여층 규모의 지하도시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처럼 보인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의혹들을 가득 품고 있는 지하도시 데린쿠유 아직 탐사하지 못한 아래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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